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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그리고 냥파오

살아가기

by 우아하니 2023. 8. 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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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냥파오면 어때?

 

냥파오娘炮 [niángpào] (남자를 가리킴.)

남자인데 행동이나 성격 등이 여자와 같은 사람 여성성을 숨지기 않은 남성 즉,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냥파오 이모티콘

2.

얼마전 우리 대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중국은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보통 6월에 졸업식이 거행된다. 이맘때가 되면 캠퍼스는 이상스러운 열기로 들뜨곤 한다. 대학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관문을 지나 졸업생은 저마다 불안하고 냉혹한 경쟁 사회로 뛰어들 채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사회에 연착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또 다시 몇 년의 모색기를 버는 학생들이 있다. 물론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살길을 궁리하다 어영부영 졸업식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이 어떻든 졸업생들은 졸업하는 그날 딱 하루만은 졸업 가운 속에 걱정을 감춰둔 채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과 아쉬움을 나눈다. 이번 졸업식은 유난히 이른 더위 탓에 꼭두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전교생 합동 사진 촬영을 마치고 각 단과별 사진 촬영까지 끝냈지만 8시가 채 되지 않았다. 우리 학과 학생들과 개별적으로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이제 그만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A가 날 손짓하며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 학과의 몇 안 되는 남학생 중 하나인 A였다. A 옆에는 낯선 얼굴의 남학생이 같이 있었다. “내 친구랑도 같이 찍어요. “ 난 얼떨결에 모르는 남학생과 같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졸업식 행사는 끝이 났다. 나중에 위쳇(WeChat)을 열어보니 학생들이 보낸 졸업 사진들로 그득했다. 그중 A가 보내준 사진과 글을 보다 난 깜짝 놀랐다. 활짝 웃는 A와 그 남학생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남학생을 ‘내 애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면서 A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동안 쉬쉬했지만 그들 사이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이제 졸업하는 마당에 나한테도 알려도 되지 않을까 싶었단다. 뒤늦은 A의 고백에 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A가 냥파오, 우리말로 하자면 여자애 같은 남자라는 건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나긋나긋한 목소리에다 누구보다 여리고 감성적이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 A가 냥파오일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였다니. 꼭 잡은 그 둘의 손을 바라보니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다 곧 부끄러워졌다. 누구보다 학생들에게 너그러운 척, 학생들을 잘 이해하는 척했던 내 위선이 드러난 것 같아서. 동성애자에 대한 내 고리타분하고 비뚤어진 시각을 들킨 것 같아서.

 

사실 나와 같이 여전히 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이 많다. 특히나 유교적 사상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그런데 이런 성적 편견이 정치적 해석과 맞물리면서 중국에서는 더욱 더 문제시되고 있다. 중화 민족의 부흥을 위해서는 나약한 냥파오보다는 마초적인 남성적 기질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정협의 상임위원인 쓰쩌푸斯澤夫까지 나서 '남자 청소년 여성화 방지에 관한 제안'까지 제출하며 여성화되는 중국에 큰 우려를 표했다.

 

3.

몇 해전부터 중국 신문들은 "냥파오 흐름娘炮之风은 그만 멈춰야 한다"고 꾸준히 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냥파오 흐름은 지나치게 겉모습만 중시하고 병적인 심미관과 잘못된 성의식을 조성하여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반감을 살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냥파오' 현상이나 동성애 문제는 예전처럼 비밀거리도, 수군거릴 가십거리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시대가 변하고 사회에서 남녀 인식에도 큰 전환이 생기면서 성의식이나 성에 대한 개념들조차 모호해지고 있다.

인터넷 스타网红 리쟈치李佳奇

 

인터넷 스타网红 리쟈치李佳奇같은 남자 호스트가 입술을 빨갛게 칠하며 립스틱을 파는 건 라이브 커머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세상에 당당하게 공개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단지 여성,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나누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로 치부되고 있다. 성의식의 변화를 기존의 가치나 정치, 문화적으로 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안타까움은 상대에 대한 몰이해나 편견 때문이 아니다.

 

성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본능과 본능의 이끌림을 누가, 무엇이 막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성의식으로 문득문득 세상을 바라보는 내게 A는 묻는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이런 자기 자신을 알아봐주고 이해해 주는 이들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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