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66년 어느 날, 24살 청년 교사 황캉푸汪康夫는 하루아침에 강간범이 되었다.
중국 장시성 롄화현 초등학교 5학년 교사였던 그는 젊고 패기넘치는 청년이었다. 놀 것도 마땅치 않던 그 당시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산으로 올라가 야외 수업을 했다. 삐걱대는 의자에 앉아 교과서만 외워대는 수업보다 생생한 체험 학습은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학교의 관심이 그에게 쏠릴수록 그를 고깝게 보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야외 수업을 하고 막 교실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교실로 공안이 들이닥치더니 그를 끌고 나갔다. 그가 2명의 여학생을 강간하고, 10여명의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명분이었다. 강간범이라는 모욕적이고 갑작스런 죄명보다 아이들의 놀란 눈망울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무리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로 지명된 여학생들에게 강제로 서명을 요구한 이들과, 그들이 제출한 조사서 밖에는 그의 죄를 증거할 것도 증명할 것도 마땅히 없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상한 사건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쳐놓은 덫에 걸려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10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갔다. 이후 그 청년 교사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2.
1978년,문화대혁명 당시 날조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전국적으로 <平反冤假错案>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결백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접촉을 피해왔던 피해자 여학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뜻하지 않게도 여학생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그에게 사과와 동정을 표했다. 학생들은 사건 당시 자신들에게 사건 조작을 강요했던 선생들의 이름과 그때의 정황 등을 낱낱이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것에 힘을 얻은 그는 항소를 했다.
*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청년 황캉푸汪康夫는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유독 그에게만 냉혹했다. 지금까지도 각종 법원은 그의 안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으려 하거나 증거 없음으로 되돌려 보냈다. 다른 법원에 서류를 접수해도 제출한 증거가 법원의 과실을 입증할 것으로 충분치 않는다며 사건 심리를 종료시켰다.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점점 깊어지는 병에도 그는 포기를 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함께 아파하는 아내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 마음이 통한 듯 그가 다시 제출한 항소장에 검찰이 긍정적인 검토를 해 보겠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의 온갖 어려움과 회한이 씻겨나가고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다시 잡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무참히 날아가 버렸다. 최근 최고 법원도 그의 안건을 다시 지방법원으로 이송시키며,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3.
‘내 나이 벌써 80, 사람으로 산 세월은 겨우 24년뿐, 그 나머지 시간은 난 사람으로 살 수가 없었다. 제발 나는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다.’ 고작 사람답게 산 세월은 24년, 그 후 10년의 옥살이, 나머지 40여 년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싸운 세월이었다. 슬하의 2남 1녀는 아버지의 고통과 함께 자랐다. 과연 그들의 인생을 누가 보상하고, 증명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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